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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이슈 최저임금 인상과 갈등

[취재파일] 2021년 최저임금 8천720원, 어떻게 결정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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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의 밤 11시간, 민주노총 불참과 공익위원 단일 안 표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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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4일 새벽, 내년도 최저임금 수준이 결정됐습니다. 올해보다 130원 오른 8,720원으로 월급으로 환산하면 182만 2,480원입니다. 올해보다 27,170원 올랐습니다. 인상률은 1.5%에 불과합니다. 현 정부 들어 최저입니다. 지난해 2.87%보다도 훨씬 적습니다. 아니, 1988년 최저임금 제도 도입 이후 33년 만에 최저치입니다.

13일 오후 3시부터 14일 새벽 2시까지, 12시간에 걸쳐 차수를 바꾸고 밤을 새워가며 진행된 최저임금위원회 8차~9차 전원회의 과정을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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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삭감안은 안 된다" 민주노총 불참한 채 시작

13일 월요일 오후 3시, 8차 전원회의가 시작됐습니다. 회의는 민주노총 추천 위원 4명이 빠진 채 시작됐습니다. 지난 9일 6차 전원회의에서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줄이자는 사용자 측의 수정안에 반발해 퇴장한 이후에도 사용자 측 입장에 변함이 없자 이에 반발해 참석을 거부한 겁니다. 앞서 노동자 위원들은 올해 8,590원에서 840원을 올린 9,430원 방안을, 사용자 위원은 90원을 깎는 8,500원 안을 제시했습니다. 각각 9.8% 인상과 1% 삭감으로 견해차가 컸습니다.

한국노총 추천 위원 5명은 참석하긴 했지만, 여전히 삭감안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시했습니다. 최저임금 도입 이후, 최저임금이 삭감된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한국노총 이동호 사무총장은 "이 협상에 참여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최초 안에 이어 수정안까지 삭감안을 가져온 사용자 위원들과는 협상이 무의미하다고 느꼈다. 그러나 저임금 노동자의 삶이 달린 최저임금을 사용자 위원에게만 맡겨둘 수 없어 참석했다"고 말했습니다.

그 시각, 민주노총 위원들은 최저임금위원회가 열리는 고용노동부 건물 앞에서 사용자 측을 규탄하고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었습니다. 동시에 중앙집행위원회를 열어 회의에 다시 참석할지도 논의하고 있었습니다. 윤택근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집회에서 "삭감이나 동결을 주장하는 것은 최저임금위원회 설립 취지를 훼손하고 국민들을 우롱하는 것이다. 삭감안을 철회하지 않으면 더는 이 논의기구에 있을 필요가 없다"고 발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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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익위원 '논의 촉진구간' 0.3%~6.1% 제시

경영계는 코로나19 경제 위기 속에서 고용을 유지하려면 동결 또는 삭감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이태희 중소기업중앙회 스마트일자리본부장은 "최저임금 인상이 코로나19로 어려워진 상황을 더 어렵게 하는 기폭제가 되면 안 되겠다. 한 치 앞도 바라보기 어려운 상황에선 영세기업과 근로자들, 모두의 절박한 현실을 잘 되돌아봐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공익위원들은 '심의 촉진구간'을 제시하고 이 안에서 노사 양측이 수정안을 내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구간은 8,620원에서 9,110원 사이, 인상률로 보면 0.3%~6.1% 사이입니다. 사용자 측에는 삭감·동결을 포기하고, 노동자 측에는 기존 인상안보다 훨씬 낮은 수준으로 내려오라는 제안이었습니다. 구간의 가운데 수준은 지난해 2.87%에 근접한 3.2%였습니다.

회의는 정회와 속개를 반복하며 이어졌습니다. 공식적인 반응과 별개로 각 위원들은 분주히 회의실을 옮겨가며 물밑 협상을 이어나갔습니다. 특히 최저임금 수준 결정이 임박한 전원회의에서는 노·사·공, 3주체의 위원들이 모두 모인 상태에서 회의를 계속하지 않습니다. 자주 정회를 하며 자기네끼리 회의를 하거나, 간사들이 모여 운영위원회 회의를 하거나, 그것보다 더 적은 사람들이 모여 줄다리기를 이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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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식사 후 회의를 이어가기로 한 저녁 8시, 민주노총 위원들은 기자실을 방문해 최종 불참을 선언했습니다. 장외 투쟁을 하면서도 물밑 소통을 이어가다 이를 중단하기로 한 겁니다. 윤택근 부위원장은 "최저임금 설립 취지 근거에도 벗어나고 목적에도 맞지 않는 삭감안을 계속 주장하는 사용자 측과 더 이상 대화할 수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코로나 19로 어렵다고 하지만 지금 결정하는 건 내년도 최저임금이다. 중소·자영업자들이 최저임금 인상으로 힘들다는 것을 잘 알지만, 그 문제는 최저임금이 아니라 다른 정책으로 해결해야 할 사안"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래도 남아서 조금이라도 최저임금을 올릴 수 있도록 협상을 이어나가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윤 부위원장은 "삭감안을 철회하고 머리를 맞대 함께 살 방안을 모색하자고 얘기했지만, 사용자 측은 대답이 없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남은 위원들은 한국노총 위원 5명과 사용자 측 위원 9명, 공익위원 9명이었습니다. 회의는 자정을 향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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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차에서 9차 회의로…양보 없는 줄다리기

자정이 지나면서 절차에 따라 전원회의는 9차로 차수가 넘어갔습니다. 8월 5일 법정 고시 기한을 맞추려면 이미 날짜가 빠듯했습니다. 위원들은 더 결정을 미룰 수 없다며 회의를 이어갔습니다.

2차 수정안에서 노사 양측은 모두 공익위원의 심의 촉진구간을 수용했습니다. 아주 극단적인 형태로요. 공익위원이 제시한 금액대에서 노동계는 상한을, 경영계는 하한을 수정안으로 제출한 겁니다. 논의 끝에 3차 수정안이 나왔지만, 별반 다를 바 없었습니다. 노동계는 6.1% 인상안을 유지했고, 경영계는 수정안에서 15원 올린 8,635원을 가지고 왔습니다.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자 노사는 모두 공익위원에 단일 안을 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공익위원이 중립적인 안을 제시하면 거기서부터 수준을 다시 논의해보자는 겁니다.

새벽 1시쯤, 박준식 위원장을 비롯한 공익위원 9명은 논의 끝에 1.5% 인상하는 8,720원 안을 내놨습니다. 산출 근거로는 근로자 생계비 개선분 1% + 올해 소비자물가상승률 전망 0.4% +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 0.1%를 제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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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저 인상률인 1.5% 안이 나오자 한국노총 위원 전원은 즉시 반발했습니다. 0.3%와 6.1%로 좁혀진 수정안 사이에서도 사용자 측 안에 매우 가까운 수치였기 때문입니다. 또 인상률이 역대 최저라는 점도 문제였습니다. 한국노총은 "공익위원은 책임을 방기하고 사용자 위원의 편을 들어 자신의 편파성을 만천하에 보여줬다"며 위원직을 사퇴하고 퇴장했습니다. 김현중 한국노총 부위원장은 "IMF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1%대의 최저임금 인상은 없었다. 도저히 1.5%에 대해서는 수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퇴장을 결정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에 더해 사용자 측인 소상공인위원회 오세희, 권순종 부회장도 퇴장했습니다. 최저임금 삭감을 강하게 주장해 오던 위원이었는데 1.5% 인상안에 반발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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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공익위원 9명과 사용자위원 7명이 남았습니다. 논의는 빨라졌습니다. 새벽 2시 10분쯤, 의사봉 3타가 울려 퍼졌습니다. 공익위원 단일 안이 표결에 부쳐졌고, 16명 가운데 찬성 9명으로 8,720원 안이 가결됐습니다. 익명 투표였지만 반대한 7명은 사용자 위원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박준식 위원장은 "아쉬움이 남긴 했지만 현재 국가적으로 극복해야 할 큰 위기 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해 노·사·공익위원들이 최선을 다했다"며 소회를 밝혔습니다. 또 "장기적인 관점에서 일자리와 노동시장, 경제 주체를 보호하고 우리 경제의 지속가능성을 돈독하게 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결정이 이뤄진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권순원 공익위원은 "최저임금이 기대 이상으로 올랐을 때의 초래될 수 있는 노동시장 일자리 감축 효과, 그것이 노동자들에게 미치는 생계에 대한 부정적 영향이 훨씬 크다고 판단했다"고 말했습니다.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 폭을 낮게 잡은 건, 코로나 19로 인한 경영난 속에 최저임금 인상이 해고로 이어질 것에 대한 부담 때문이라는 겁니다.

지난 6월 11일 1차 전원회의를 시작으로 본격 논의를 시작한 최저임금위원회는 이렇게 마지막 날 밤 논의를 급발진시키며 끝을 맺었습니다. 올해는 특히 논의가 공전의 공전을 거듭한 끝에 노·사 양측이 이견을 전혀 좁히지 못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노사 양 측이 모두 반발하는 가운데 공익위원들이 정한 수준이 그대로 확정됐습니다.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1천 원 가까운 차이를 한 달 넘게 좁히지 못하다가 한 시간 만에 뚝딱 결정해버리는 모습은 아쉬움을 남깁니다. 그 기간 동안 노동자가, 사용자가, 또 국민들이 좀 더 공감하고 받아들이고 준비할 수 있는 장이 열렸다면 어땠을까요. 지금과 같은 과정이라면, 6월 12일 새벽에 2차 전원회의를 열어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것보다 얼마나 더 나은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최임위 운영할 거면 그냥 정부가 알아서 결정해라"는 이야기, 괜히 나오는 게 아닙니다.
화강윤 기자(hwaky@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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