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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이 순간] 제주바다 ‘플라스틱 만다라’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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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알갱이’들 거두어…바다 생명 향한 애도와 축복


“단조로운 패턴의 모래를 쓸어 담다가 햇빛에 반짝이는 플라스틱을 발견할 때 모순적이게도 기쁜 마음이 듭니다. 예쁘거든요. 찰나의 그 마음을 포함해 모든 경험을 받아들이셔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절망에서 멈추면 어떤 행동도 할 수 없으니까요.”

정은혜 ‘에코 오롯’ 공동대표는 제주 바닷가의 작은 플라스틱 알갱이들을 모아서 만다라를 만드는 환경운동·생태예술 프로젝트 ‘2020 플라스틱 만다라’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대칭적인 원형의 문양으로 불교의 상징들을 배치한 그림인 만다라는 불화의 한 종류이다. 넓게는 자연의 순환을 나타내는 원형의 이미지를 총칭하기도 하는데 정 대표는 티베트 불교의 모래 만다라에서 영감을 받았단다. 티베트의 승려들은 며칠, 몇주에 걸쳐 색 모래로 정교한 문양의 만다라를 만들고 완성 직후 미련 없이 쓸어버린다. 그 모래를 모아 가까운 강이나 바다에 흘려보내는데, 만다라를 만드는 동안 그 모래에 담은 축복들이 물길을 따라 온 세상에 가닿기를 바라는 기도이다. 반면 플라스틱 만다라는 바다를 떠다니는 미세 플라스틱을 제주도 바닷가에서 거둬들여 만든다. 거두는 작업을 통해 축복을 내보내는 역설이 이 작업에 담겨 있다.




그러나 아무리 플라스틱을 주워도 해결할 수 없고, 없애기 어렵다. 플라스틱은 자연 상태에서 분해되기까지 약 500년이 걸린다. 이 작업에서 직면해야 하는 또 다른 절망감도 분명히 있다고 정 대표는 말한다. 플라스틱이 온 세계와 이어진 바다로 나아가 생명을 죽인다는 사실을 깨닫기 때문만은 아니다. 알록달록한 플라스틱을 발견했을 때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기쁨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예쁘고 편리해서 플라스틱을 사용해온 내가 보인다. 이 비극의 원인을 제공한 나를 직시하는 과정은 불편하다. 그러나 심리치료사이기도 한 그는 서둘러 그 감정을 처리하려 하지 말고 그대로 불편해하기를 권한다. 그것이 우리 때문에 죽어간 많은 생명들에 대한 최소한의 애도 방식일 수 있다. 지금껏 흘러온 우리의 삶의 방향을 바꾸려면 먼저 그 불편함을 직시해야 한다. 원인을 바로 보고 고통을 통과해야 그 뒤의 변화를 도모할 수 있다고 정 대표는 생각한다.


모래 속에 숨어 잘 보이지 않는 작은 플라스틱을 찾기 위해 무릎을 꿇고 절을 하듯이 낮게 엎드린다. 한 참가자는 이 작업을 일컬어 ‘행동하는 기도’라고 표현했단다. 바다와 바다 생명에게 애도와 사죄를 보내는 의식이다. 더 많은 이들과 이 기도를 함께 하기 위해 정은혜 대표는 이달 15∼16일 녹색연합과 시민 참여 프로그램 ‘플라스틱 없는 제주’ 행사를 연다. 이틀간 오후 2~6시 제주 제주시 조천읍 함덕서우봉 해변을 찾은 시민들과 함께 채반으로 모래를 거르며 미세 플라스틱을 모을 계획이다. 제주/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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