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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한미, 79년 10월까지 남북미 회담 추진...외교문서 공개

등록일 2020.03.31 재생수1,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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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30년 또는 40년 이상 비밀 보존 기간을 넘긴 외교 문서 약 24만 쪽이 일반에 공개됐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문서를 보면 지난 1979년 잠시 거론된 남북미 당국 회담과 관련해 한미 양국이 1979년 10월 말, 박정희 당시 대통령 피격 직전까지 매우 긴밀하게 협의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왕선택 통일외교 전문기자의 보돕니다. [기자] 남북미 3당국 회담은 1979년 7월 1일 한미 정상회담을 마친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이 공동으로 북한에 제안한 3자 협의체입니다. 이 제안은 북한 외무성이 7월 10일 비난 성명을 발표한 뒤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졌습니다. 카터 전 대통령이 대선 승리를 위해 제안한 회담으로 알려졌지만, 당시 8.18 도끼 만행 사건 이후 국면에서 박 전 대통령이 동의한 배경은 의문의 대상이었습니다. 40년 만에 비밀 해제된 정상회담 준비 자료를 보면 우리 정부도 득보다 실이 많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렇지만 박 전 대통령은 주한미군 철수와 남한 인권 문제와 관련해 압박감을 느끼고, 양보 카드 차원에서 조건부로 수락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조건은 회담이 열릴 경우 한국이 주역, 미국은 보조 역할을 하고, 미국은 북한과 별도 양자 회담에 응하지 않으며, 주한미군 철수 문제는 회담에서 거론하지 않는다는 약속이 주요 내용입니다. 한미 양국 요청으로 북한에 제안을 전달한 중재국가는 인도네시아였는데, 남북미 회담 일정도 9월 10일 자카르타로 제안했습니다. 미국은 인도네시아 외에도 루마니아와 유고를 통해 북한과 간접적으로 의사 소통을 진행했습니다. 그래서 북한 반응에 대해 한국은 제안 거부로 해석했지만, 미국은 거부가 아니라고 판단하는 등 상황 인식과 대응에서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두 나라는 10월 22일과 23일 서울에서 비밀 합동 협의를 갖고 3 당국 회담 추진과 관련해 상당히 세밀한 협의를 진행했습니다. 미국은 북한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경제 지원책은 물론 북한 정식 국호 사용과 남북 상호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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